태조 7년, 서기 1398년 8월 26일과 27일에 걸쳐 벌어진 이 사건을 무인정사, 또는 제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도당을 조종하여 세자 이방석과 이방번을 제거한 이방원은 2년 후인 1400년 1월 넷째 이방간이 일으킨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세자가 된다. 그해 11월, 정종의 양위를 받아 보위에 오르니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조선의 기틀을 다졌던 제3대 임금 태종이다.
정도전 50회 - 왕자의 난, 태종 즉위 해설
삼봉 정도전. 봉화의 향리 가문 출신의 그는 고려 말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던 염의선생 정운경의 장자로 태어났다. 정운경은 그에게 후세에 도를 전할 큰 인물이 되라는 의미로 도전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목은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정몽주, 박상충, 이숭인 등과 교유하였다. 공민왕 대에 과거에 급제한 그는 우왕 즉위 직후 이인임의 친원정책에 반대하다가 나주 거평부곡으로 유배를 당했다.
이후 10년 가까운 유배와 유랑 생활을 거치면서 백성의 고통을 몸소 체험한 그는 역성혁명을 결심하고 동북면의 군벌 이성계와 의기투합하였다. 이성계의 천거로 관직에 복귀한 그는 1388년 위화도 회군 이후 조준, 남은 등 급진파 사대부들과 더불어 전제개혁, 폐가입진 등을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스승인 이색은 물론 정몽주와 갈등을 빚던 그는, 마침내 정몽주의 탄핵을 받아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방원이 정몽주를 척살함으로써 목숨을 구한 그는 1392년 7월 조준, 남은, 배극렴 등과 더불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조선을 개창하였다.
개국 일등공신이 된 정도전은 왕조의 기초를 다지는 데 주력하였다. 조선 최초의 법전인 조선경국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저술을 남기는 한편, 한양 건설, 사병혁파 등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조선을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만들고자 하였다. 무엇보다 민본과 민생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그는 토지개혁, 농업진흥, 세제감면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표전문 사건 등 명나라와의 갈등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요동 정벌을 추진하던 와중에 세자 책봉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에 의해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방원은 그를 역적으로 매도하고, 그의 업적 또한 폄하하는 작업을 펴는 동시에, 사병혁파 등 정도전의 정책 대부분을 수용하는 이중적인 행보를 보였다.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지고도 역적으로 규정됐던 그의 명예는 500년이 지난 고종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회복되었다.
고려 말의 난세에 절망하지 않고 민본의 이상으로 역성혁명을 기획하여, 마침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고 설계했던 삼봉 정도전. 그는 우리 민족사에서 손꼽힐 만한 위대한 혁명가이자 대정치가다.
정도전 50회 - 정도전의 일생 해설
서기 1422년, 세종 4년, 태종 이방원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일생은 피로 얼룩진 비극적인 삶이었지만 백성들에게는 평안함을 가져다준 시대였다.
그는 자신과 가문을 위해 권력을 쟁취했지만 결국 그것을 뛰어넘어 국가와 백성을 위해 헌신했다.
정치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평생을 국가에 헌신한 투철한 정치가였지만, 말년에는 스스로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 한 인간으로 살다 죽고자 했다.
이방원이 눈을 감자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태종 이방원은 일생의 동반자이자 한 때는 정적이었던 원경왕후 민씨와 함께 잠들었다.
태종 이방원 32회 - 태종의 승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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